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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6-정오 정오 사람과 인간 사람과 사랑 사람과 사랑과 사라짐 모두 까무룩 음울한 단어 금세 휘발되겠지 사람도 사랑도 사라짐도 뚜껑을 야물게 닫아야 해 그것이 제 발로 나가는게 아닐텐데 몸 한 쪽이 덜컥 잘려 덜렁 떨어지고 나뒹구면 생의 외침을 표음할 수 없을 때 정오가 시작한다
습작 5-사랑은 훌쩍 눈물은 줄줄 사랑은 훌쩍 눈물은 줄줄 무해한 밥상 위 죽음은 없다 나는 엄마의 유일한 숨 쉴 구멍 고해성사는 성당 신부님에게 성흥사 미륵보살에게 엄마는 제 생애 잠시 초대한 손님이에요 언제든 돌아가야 할 길이라는 걸 건방지게 잊지 마세요 꼭꼭 씹었다 꿀꺽 삼켰다 사랑은 훌쩍 눈물은 줄줄 울음과 얼음 사이에서 신음을 참음
습작 4-종이심장 종이심장 프린트는 장당 흑백 50원 컬러 200원, 양면인쇄 4분할로 심장을 인쇄한다 합리를 놓치기 싫어 괜히 흑백으로 인쇄한 나는 이만큼 옹졸하지요 두 눈을 부릅뜨며 손끝으로 짚어 보는 동맥과 정맥 눈에 보인 활자를 누르며 그 속의 진심을 읽으려 해 너무 작고 어두워 보이지 않은 마음은 예리했다 베인 손끝으로 따갑고 쓰라린 상처가 벌겋게 입을 벌리고 적혈구와 백혈구가 가랑이를 벌린 채 제 몫을 하겠지. 심장은 너무 쉽게 구겨지고 바스락 더듬으며 흑백 심장의 構造만 읽는 거야 심장은 활개해 피는 흐르다가도 넘치지 쿵쾅거리는 動態는 꽝꽝 얼은 凍太 우리는 심장도 없이 서있는 모두 두 눈 시퍼렇게 떠 있는 장님
습작 3- 더러움의 역설은 깨끗함이 아니다 더러움의 역설은 깨끗함이 아니다 더러워서 피하다 더러우면 피해야지 더럽기에 한 없이 고고한 저 고개 깨끗이란 지긋지긋 더러움은 미움과 노여움 두려움이 움트는 마음 친히 옆으로 피해주는 이 모습은 부정 不正 아닌 모정 慕情 더러움의 여운과 그리움이 있더라?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귀엽다지 모든 사랑은 더럽다. 모든 성교는 더럽다. 모든 타인은 더럽다. 우리는 모두 더럽게 태어났다. 피임없이 탄생했고 한 개인의 장기를 짓누르며 이기적이고 더러운 성질머리의 寶庫 우리는 모두 더럽기에 서로의 사랑에 관하여 가타부타 논하지 말아야 한다.
습작 2-미역국 미역국 아이를 海産합니다. 쩍 벌어진 아이의 두개골 여자의 몸에서 튀어 나오더니 生의 울음이 배고프다며 옹알종알 아기는 응애응애 처절하게 울고 간호사는 헐떡이며 인큐베이터에 그를 넣습니다 여자는 그제야 한바탕 피를 쏟고 장기는 제 자리로 귀향합니다 눈앞에 놓인 미역국 후루룩 먹어보련 한 숟갈 두 숟갈 멀어진 장기를 보듬는 고소한 참기름 미끈한 미역을 꼭꼭 씹어보렴.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당신이 산모와 어머니와 애엄마, 애기엄마와 맘으로 마음으로 태어나는 생일을 축하합니다. 生一은 다시금 生日이 된다.
습작 1-개미 개미 지루함을 죽이기 위해 죽인 개미의 서글픈 울음 슬픔이란 지루하고 무던한 것 개미는 나를 울보라 부르고 나는 개미의 비명횡사를 기억하는 추모비 운동회 천막 아래 지리멸렬하게 천박한 유년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교수의 에서 '환대'는 '우호'(友好, hospitality)로 번역된다. 저자는 본고에서 인간과 사람, 장소와 사회, 의례와 환대를 엄밀하게 구분한다. 포유류과 동물로써 존재하는 타자는 인간이고, 사회에 공존하는 '우리'는 사람이다. 장소와 사회 개념 또한 불완전한 것으로 누군가에겐 계약에 따른 또는 천부적인 것으로 해석된다. 집단 내 사람들의 상호작용인 '의례'는 긍정적으로 '환대'를 지향해야하며, 환대란 무엇인지는 본고에 다양한 예시로 나타난다. 저자가 설명한 비유를 빌려 쓰자면, 내가 지각하고 있는 저 사람은 그림자다. 온전히 감각하고, 인식하는 '대상'이 될 수 없는 추상의 존재. 빛에 굴절돼 그려진 그림자만 보고 전체를 가늠한다. 그 과정에서 오류(모욕과 전투)가 발생하고 서로의 명예가..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행복과 슬픔은 바로 맞닿은 기분이라는 것. 습자지 한 장만큼의 두께로 서로 "사맛디 아니"한다. 동시에 성립되지 않을 것 같은 두 가지는 실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심지어 충돌하지 않고 서로 잘 통한다. 행복하면서 슬픈 존재. 유약한 인간. 약한 내가 너를 지켜주고, 악한 사람에게서 너가 나를 지켜줘야 할 부지런한 사랑을 이 책을 읽는 내내 해봤다. 사랑의 속성은 끝없이 부지런함. 근면함에 있다는 것을.
유진목 <작가의 탄생> 1. 서론 고등교육 과정 중 시-문학 교육 본질의 존재론적 가치 논의는 오래도록 논의되어온 연구 주제이자, 교육, 문학, 사회 등 다양한 학문의 영역이 참여하여 비판적 인식을 쏟는 의식이다. 시를 교육하는 문제의 주된 논의는 '시 감상의 주체가 해석의 자율성'이다. 시 감상은 주관에 기댄 서정과 만나 달라지는 언어 놀이적인 장르로 독자에게 닿기 전 텍스트는 해석은 주관에 기댄 서정에 따라 달라지는 질료 質料로 존재한다. 시-교육이란 교육 이데올로기와 계급 주체의 문식성이 결합한 형태로, 한국-현대-시는 정답을 위한, 목적론적인 태도로 독자와 만나왔다. 시-교육의 한계를 우리는 알고 있고, 그것이 가져올 시의 문학적 경화 硬化를 걱정한다. 전문가는 많은 지적을 뱉어 실천적인 담론을 조성해왔지만, 한국 교실..
강윤정 『문학책 만드는 법』 편집자 K이자 나의 롤모델인 편집자이자 이번엔 작가인 '강윤정'님이 유유 출판사 땅콩 문고와 함께 을 출간했다. 문학동네 편집자인 그가 유유 출판사에서 자신의 이력과 노하우를 전수한다는 것이 처음엔 의아했으나, 나는 텀블벅에 후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문은 결제만 미진하게 남길뿐, 강윤정 작가님 - 이번 글에선 편집자님이 아닌 작가님으로 언급하고자 한다. 의 책에 언급된 노하우는 실은 유튜브에서도 대략 언급하신 내용이다. 물론 책에 더 자세히, 꼼꼼히, 언급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영상과 책으로 작가님과 편집자 담론을 주고 받으며, 내가 '편집자'가 될 깜냥이 될까, 자문해보았다. 물론 하나의 목표와 지향을 떠올릴 땐, 그것이 무엇이든 과정은 항상 고통스럽다. 언제나 지리멸렬하고, 할 수 있을지 떨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