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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책

유진목 <작가의 탄생>

 

 

 

 

 

1.  서론

   고등교육 과정 중 시-문학 교육 본질의 존재론적 가치 논의는 오래도록 논의되어온 연구 주제이자, 교육, 문학, 사회 등 다양한 학문의 영역이 참여하여 비판적 인식을 쏟는 의식이다. 시를 교육하는 문제의 주된 논의는 '시 감상의 주체가 해석의 자율성'이다.

   시 감상은 주관에 기댄 서정과 만나 달라지는 언어 놀이적인 장르로 독자에게 닿기 전 텍스트는 해석은 주관에 기댄 서정에 따라 달라지는 질료 質料로 존재한다. 시-교육이란 교육 이데올로기와 계급 주체의 문식성이 결합한 형태로, 한국-현대-시는 정답을 위한, 목적론적인 태도로 독자와 만나왔다. 시-교육의 한계를 우리는 알고 있고, 그것이 가져올 시의 문학적 경화 硬化를 걱정한다. 전문가는 많은 지적을 뱉어 실천적인 담론을 조성해왔지만, 한국 교실에선 여전히 시의 주제 찾기에 혈안이다.

   방금 문단에서 또 한 명의 시인이 탄생했다. 작품은 새롭게 등단한 평론가에게 비평돼 묶여 독자에게 내던져졌다. 시인과 평론가, 독자 모두 같은 시-문학 교육 아래 묶이는 외연이나 작품을 두고 감수성을 넘어서는 의식을 공유한다. 문학의 총아 寵兒가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유진목이『작가의 탄생』시집으로 자기인식 自己 認識 과 연관해 대답했다. 특히 표제 시 <작가의 탄생>은 그것은 자성과 구분된 타성이나, 자성에서 출발한 시라는 점에서, 포착한 의식을 언어로 매개한 문학의 총아인 시인의 탄생, 존재의 환기를 말한다.

 

 

2.

  『작가의 탄생』의 <작가의 탄생>은 각각 1막(p.13, 23, 35), 3막(p.66), 7막(p.131)에 등장한다. 각 작품은 생명력을 가진 시어와 죽음을 대비해 시인의 자기 인식, 고독, 여성으로서 시인이 인식하는 낙태란 무엇인지 말한다. 특히 7막은 가장 표제 시다운 작품이라고 감상해 작품을 인용하여 구체적인 감상과 함께 덧붙이고자 한다.

 

나에게는 신이 있었다. 신은 수시로 찾아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했습니까?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났고, 긴장한 탓인지 종일 두통이 있었습니다. 몸은 피곤한데 지금은 잠이 오지 않아 괴롭습니다. 나는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점심에는 수제비를 먹었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아 참, 그 집은 언제라도 다시 가 볼 생각입니다. 정말 맛있었거든요.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 갑자기 햇빛이 쏟아져 눈을 감았습니다. 대답을 이어 가는 동안에는 별것 아닌 일들이 즐겁게 혹은 애틋하게 느껴졌다.

 

신이 다른 대답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좀 더 특별한 무엇인가를. 그러나 내게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러자면 거짓말을 좀 해야 했는데 신에게까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신은 간단히 질문을 하고 듣는 시늉 없이 곧바로 사라졌다. 그러나 나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신이 줄곧 듣고 있다는 간결한 믿음이. 나는 신에게 묵묵히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신은 그다음 질문을 이어 가는 방식으로 듣고 있었다는 걸 알게 하였다.

 

당신은 왜 죽으려고 했습니까?

 

나는 신이 그 일을 알고 있어서 놀랐다. 신은 내가 말하지 않은 것도 알고 있었다. 신은 나의 마음과 같았다. 그러나 내가 죽으려고 했던 이유는 생각나지 않았다.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하고서 잊어버린 것들은 그게 무엇인지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오랜 질문이 있은 뒤에 신은 결국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에 다다랐다. 그날 나는 사람을 하나 죽이고 싶다고 했다. 사람을 하나 죽이고 싶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가 죽이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나의 삶을 살고, 그는 저절로 죽었으면 한다.

 

나는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늘 신과 함께였기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나는 처음으로 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신은 대답이 없었다. 다시 물었다. 당신은 있기는 한 것입니까? 그때였다. 정말로 그를 죽이고 싶습니까?

 

나와 신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유진목, 2020,『작가의 탄생』, 민음사, p.131

 

 

    문학의 장르를 자아의 세계화, 세계와 자아의 갈등, 자아와 세계의 대결로 설명하곤 한다. 작품 안에서 존재와 존재를 둘러싼 세계의 관계를 언어로 표현한 것이 문학이고, 특히 자아가 세계로 확장하는 세계화를 이루는 시 정의에서, 특정한 연을 구분할 수 없지만 위의 시에 드러난 마지막 구절은 분명히 자아와 세계는 합일했다. 시가 전개되는 과정은 나와 신의 거리, 자아와 세계의 관계가 서서히 가까워지고 좁혀지는 수순이다. 신은 내게 일상적인 물음을 던지는 신 辛 씨처럼 등장한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전지적 작가시점을 톺았다. 작가가 작중 인물의 심리까지 모두 서술하는 서사의 시점이지만,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는 말 자체는 문학을 떠나서도 왕왕 사용한다. 시의 ‘나’가 문학 작품의 인물이고 ‘신’이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라면, ‘신’이 내게 던지는 물음과 ‘나’의 아주 구체적인 대답의 열거는 플롯 Plot 이다. 내게 특별한 것이 없어 거짓말을 해야 하지만 ‘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은 내가 윤리적인 사람이라 그런 것인가. 또는 다음 구절에 언급되는 ‘믿음’으로 나타나 ‘신’에 대한 ‘나’의 고고한 신앙심 때문인가. ‘신’은 질문만 던지고 경청은 하지 않는, 배려 없는 상대이지만, ‘나’는 맹목적으로 ‘신’을 믿는다. 이러한 모습은 시인이 문학 작품에서 존재하는 인물의 시선으로 본 삶의 영역이라고 느꼈다. 작가의 글은 읽는 주체에게만 친절하면 된다. 글 속 인물에게까지 친절한 의무는 없다. 그의 마음을 예리하게 꿰뚫어 놓고, 질문을 한 바탕 쏟고 나서 휙 돌아서는 건 또 다른 사건을 배치해야하는 작가의 개괄이 있겠으나, 작품에서 깨금발을 들고 서있는 인물은 결코 알지 못한다.

    작가인 ‘신’은 ‘나’의 아주 깊은 비밀까지 캐내어 고발한다. 사실 이후에 “신은 내가 말하지 않은 것도 알고 있었다. 신은 나의 마음과 같았다. 그러나 내가 죽으려고 했던 이유는 생각나지 않았다.”등 ‘나’의 인식에 떨어진 것까지 ‘신’이 알고 있는 것은 더 이상 ‘나’의 의지로 사고할 수 없는 모습을 그린다. 인물이 플롯에서 철저히 계산된 사건 아래 움직이듯, ‘나’의 사고도 정서도 아주 예리하게 짜인 순서대로 움직일 것이다. ‘신’의 질문은 철저히 육하원칙 아래 ‘나’에게 닿는다. 오늘 무엇을 했는지, 왜 죽고 싶었는지. 시의 결 부분에 ‘나’의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적인 외침 이후 ‘신’이 ‘나’에게 묻는 건 “‘정말로’그를 죽이고 싶습니까?”이다. 시에 줄곧 드러난 질문들과 달리, 이 질문은‘나’의 마음, 생각에 관한 첫 번째 질문이다. 이 질문을 통해서 ‘나’와 ‘신’은 합일을 이룬다.

 

3. 결론

    유진목은 『작가의 탄생』중 특히 7막 <작가의 탄생>를 통해 문학의 총아 寵兒인 작가, 특히나 시인이란 인물에게‘정말로’를 묻는 사람임을 전했다. 그리고 시를 읽는 독자와 평론가 역시 이러한 마음은 공통으로 도달하는 보편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시 읽기가 어려운 것은 시를 서사적으로 읽는 관습에서 벗어날 노력을 하지 않아서다. 거창한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 까치발을 들고 조금 높은 시선에서, 쪼그려 앉아서 아주 낮은 시선에 본 세계를 ‘어떻게’ 느꼈는지 말하는 게 아니라 ‘무람없이’ 말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시-감상의 본질이다. ‘정말로’는 ‘거짓이 없이 말 그대로’라 사전에 등재돼있다. 자꾸 소설의 인과율, 플롯을 분석할 때 쓰는 ‘왜’, ‘무엇을’ 같은 말들은 각자의 의미가 어떻듯, 허구적인 문학에서 필요한 연장 鍊匠이다.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문학의 장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도구, 연장을 시시비비 쥐며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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