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책

유진목 <연애의 책>

 

 

 

 이슬아 작가님의 서평집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를 읽다가 조우한 유진목 시인의 <연애의 책>을 대차신청으로 대출해 읽었다. 시집을 완독하는 일이 드문 나는 오랜만에 끝까지, 깊은 마음으로 읽은 시집이라 이렇게 글을 남긴다. 필사를 하고, 묵독을 해보고, 낭독을 하고, 울다가 너무 좋아 이렇게 활자로 남기는 낯선 마음이 이 시집을 읽는 내내 울렁였다.

 

<밝은 미래> [ <연애의 책>, 유진목, 삼인, 2016, p.33]
<타전의 전말> [ [<연애의 책>, 유진목, 삼인, 2016, p.67]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시는 <미경에게> 라는 제목의 시다. <미경에게>는 바로 전 페이지의 <반송>과 이어지는 연작시 형태를 취한다. 화자인 '나'의 어머니인 '미경'에게 보내는 마음을 담아낸 <반송>을 읽다, 1977년 3월 젊은 '미경'과 익명의 친구가 '미경'에게 보내는 깊은 마음과 애틋함을 담은 <미경에게>를 읽었을 때 눈물이 흘렀다. 

 

 

 

미경에게

 

햇빛이 거미줄처럼 하얗게 투시되고 마당에서는 새로운 생명의 전주곡이 울려 퍼지고 있어 또 다시 맞는 새로운 하루가 달아날 기미를 보이는 이 아침 미경도 생기 넘치는 아침을 맞이하겠지

 

  대천에 있는지 서울에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어서 편지도 못하고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단다 27일에 우리 집으로 오렴 정인이랑 정희는 일요일엔 항상 만나고 있어 그날 덕수궁 미전을 관람하기로 했단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찍 오도록 해 늦게 오면 내가 벌써 나가고 없을지도 모르잖아

  너는 그동안 아름다워졌겠지 혼자 자취를 하게 되면 쓸쓸할텐데

  서울에 얼마동안이나 있었는지 모르지만 소식 하나 없었다는 것은 너무한 것 같다 여자들은 졸업을 하면 변한다고들 하지만 우리들만은 변하지 말아야지 너한테 궁금한 일들이 너무나많아

 

  정인이는 피어리스 미용사원이란다 정희는 소프라노 김정경 씨 비서로 있는데 좋은 곳에 되어서 정말 잘 되었어 나는 너무나 챙피한 곳이란다 편지에 쓰기에는 좀 그래 만나서 조용히 이야기 해줄게 이번 기회에 너가 취직 자리를 좀 알아봐 주면 좋겠어

 

  나는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있단다 언제나 삶에 보람을 갖고 살게 될려는지 모르겠어 죽지 못해 살고 있으니깐 이러다가 또 추접을 떨겠구나 여기서 그만 해야지 빨리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다 일요일에 꼭 와야 한다

 

                                             (1977년 3월 23일)

 [<연애의 책>, 유진목, 삼인, 2016, p.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