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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책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중략) 부모가 우는 걸 보는 것은 정말로 무섭지. 어른들이 유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은 정말로 무서워...... 그 생각을 하다가 화수와 우윤을 보니 둘 다 비슷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듯했다. 

 말해지지 않는 것들로 우리는 연결되어 있지. 이럴 때는 무척 가족 같군. 세 사람은 그렇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2020, 문학동네, p. 297]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2020, 문학동네, p. 331]

 

 <시선으로부터.> 는 문학동네 웹진 "주간 문학동네"의 창간을 알게 되면서 동시에 읽었던 작품이었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땐 '정세랑' 다운 작품이라고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얽히고설킨 그들의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질 거라는 확신과 기대가 두근거렸다. 그러나 내가 모바일과 웹진에 익숙한 독자는 아니기에 그저 단행본이 출간되길 고대했다. 단행본이 나오고도 조금은 기다렸다가 '북클럽 문학동네'에 가입하면서 받았다. 나름? 내게 의미 있는 선택을 받은 작품이다. 잔뜩 기대를 받은 작품이었고, 그 기댓값을 넉넉히 소화한 소설이었다. 

 

 위에서 인용한 인상깊은 문장은 제일 좋아한 문장이긴 하나, 저 문장만 제일 좋아한 건 아니다. 책의 귀퉁이는 너무 많이 접혔고, '심시선'의 책의 구절을 한 번 더 읽으려고 책을 재독 했다. 필사도 했다.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 이후로 문장이 주는 큰 너울을 만났다. 다른 느낌의 여울이다. 양귀자 작가님은 삶을 통찰하고 투과하는 시선이라면, 정세랑 작가님은 다양한 각도로 포착하는 시선이겠다. <시선으로부터.>의 줄거리를 정말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제가 정말 추천하고 싶어서 스포일러를 정말 최대한 배제해보겠다.) 화가 겸 작가인 '심시선' 여사와 그녀의 가족들의 관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심시선' 여사가 소천 후, 그녀의 장녀인 '명혜'의 주도로 가족은 '하와이'에서 심시선 여사의 '제사'를 지내기로 한다. 유교 방식의 제사가 아닌, 각자 하와이에서 심시선 여사를 기억하는 방식에서 물질적인 것을 들고 오는 것으로 제사를 치른다. 제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각자는 심 시선과 자신의 관계, 자신과 사회의 관계에 자문하고 자성하며 성숙해지게 된다. 

 

 <피프티 피플>처럼 다각도적이며 <옥상에서 만나요>만큼 개연적이며, <지구에서 한아뿐>만큼 깨끗한 소설이 <시선으로부터.>라고 말하고 싶다. 압도적으로 양귀자 <모순>에 대적할 만큼 "내 인생소설입니다! "라고 말할 순 없지만 (왜냐하면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은 정말 나의 물자체이기 때문) 적어도 "이 소설은 올해 제가 읽은 소설 중 가장 재밌는 소설입니다!"라고 말할 자신은 있다. 나는 이런 모습의 소설을 좋아한다. 싸우고 죽고 난교하고 울고 불고 터지는 갈등 말고, 내적으로 성숙해지는 성장에서 오는 파랑을 좋아한다. 그 갈등이 더 첨예하다고 생각한다.

 특정 젠더에 힌정해 말하려는 의도가 절대 아니지만, 어쨌든 소설을 읽는 건 남성으로 살아가는 내가 놓치는 목소리를 이렇게라도 들으려는 기울인 마음이다. 다양한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듣고 싶다. 설상 개인(작가)이 특정한 형태의 (플롯) 꾸며낸 서사 (스토리) 라 해도,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소설을 문장 형태로 배웠지만 언제나 목소리로 들렸다. 들린다. 듣는다. 들려온다. 친한 친구와 재밌는 수다만큼 재밌는 게 소설이다. (근데 왜 이 얘기를 했을까?) 

 

 다만 내가 정말 추천하고 좋아하는 작품임에도 굳이 굳이 단점을 찾으려고 혈안 해 짚어보자면, 복잡한 가계도가 독자에게 진입장벽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책을 읽다 보면 인물의 성격이 뚜렷해지면서 몰입하게 된다. 읽으면 해결될 문제이지만, 그 과정이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완독이 힘들 수 있다. 장편소설인만큼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는 미니시리즈를 보는 마음이 아닌 <지붕 뚫고 하이킥> 같은 시트콤을 본다는 마음으로 접하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겠다. 읽으면서 스스로 캐스팅도 해보고, 특정한 인물에게 편애도 해보고, 얘는 왜 이럴까 눈총도 주며 적극적으로 읽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좋은 문장이 나타나면 주저 없이 흔적을 남겨보자. 그러려면 책을 구입해야 하지 않을까. <시선으로부터.>를 읽은 친구와 각자 좋은 문장을 나누고 서로의 감상을 얘기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을 몇 번이고 더 읽을 의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