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책

요조 <아무튼, 떡볶이>

 『아무튼, 떡볶이』를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 떡볶이를 다룬 책. 떡볶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딱히 싫어하는 사람 없는 둥글둥글한 음식. 이 책의 첫인상은 떡볶이와 닮았다. 둥글둥글. 버스에서, 기차에서 후다닥 읽으려고 들고 온 책인데 읽는 내내 펑펑 울었다. 나와 닮은 문장 앞에 서서 멀리서 비추고 있는 저 몸짓이 서글펐다. 이 마음이 슬픔일까. 슬픔과 감동 사이를 오고 가는 묘한 감정이 왈칵 쏟아졌다. 울렁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옆에 앉았던 엄마의 손을 꼭 쥔 채로 눈물을 참느라 애썼다.

 

 "맛없는 떡볶이집이라도 존재하는 것이 나는 좋다. 대체로 모든 게 그렇다. 뭐가 되었든 그다지 훌륭하지 않더라고 어쩌다 존재하게 되었으면 가능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사십 년 가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안심이다. 그것은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라거나 내가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라고 여겨져서가 아니라 어쨌거나 백 기녀와 신중택의 젊은 날 뜨거운 밤을 통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가 존재하게 되어버렸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래오래 살아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아무튼, 떡볶이』, 요조, 위고, 2019, p. 62]

 

 위 문단 앞에서 하염없이 떨렸다. 이 사회가 통용하는 쓸모있는 인간의 기준에 내가 들어가지 않다는 생각을 최근 자주 했다. 쓸모와 무쓸모의 경계에서 나를 정의하지 말라고 소리칠 용기가 내겐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쓸모 있음을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내가 선택해서 가진 게 아닌 내 생을 그래도 부단히 살아보려는 내 노력을 작가도, 독자도 알아주는 것 같았다. 우리 다 똑같구나. 편안해지면서 서글퍼졌다. 

 

  "다 좋아한다는 말의 평화로움은 지루하다. 다 좋아한다는 말은 그 빈틈없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을 자주 짜증 나게 한다. 또한 다 좋아한다는 말은 하나하나 대조하고 비교해가며 기어이 베스트를 가려내는 일이 사실은 귀찮다는 속내가 은은하게 드러나는 제법 게으른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오만 없는 좋아함에 그닥 불만을 가지기 않기로 했다. '다 좋아한다'라는 말에 진심으로 임하지 않았다면 이 책도 이렇게 묶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떡볶이』, 요조, 위고, 2019, p.144~145]

 

 문장을 몇 번이고 읽고, 몇 번이고 낭독했다. 나를 말하는 거 같으면서 반성하게 하는 문장이었다. 좋은 게 좋은, 딱히 취향이랄 거 없이, 호불호 없는 내 취향은 실은 고약하게 귀찮음을 수반한 변명이었다. 나도 알고 상대방도 알지만, 지금껏 허울 좋게 넘어가 준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이 글을 빌어 사과한다. 이제 열렬히 '좋은 게 좋음'을 좋아해 보겠다. 오만 없이, 편견 없이 모든 선택지 앞에 겸허히 좋아해 보기로 다짐해보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왈칵 마음이 두근거린다. 두근거림? 설렘보단 긴장과 가까운 두근거림일 것이다. 

 

『아무튼, 떡볶이』를 정말 재밌게 읽었다. 떡볶이가 먹고 싶어 졌고,  오랜만에 문장 앞에서 마음이 요동쳐봤다. 그럼에도 표지가 너무 구려서 아쉽다. 왜 이 표지일까. 떡볶이 일러스트를 그냥 쓰지. 왜?! 왜?? 왜?!!!!!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무슨 생각으로 이 표지를 편집자가 채택했을까.. 떡볶이도, 작가 요조가 담고 있는 담담한 응원도 내포하지 못하는 이 일러스트가 진짜 너무 마음에 안 든다. 언젠가 『아무튼, 떡볶이』가 중쇄를 찍어 재판된다면 표지를 정말 수정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하성란 작가님의 소설집 『여름의 맛』은 복숭아 그림이 전부인 표지다. 그 자체로 이미 '여름의 맛'을 담고 있다. 달큼하고, 물이 넘치는 복숭아처럼 여름이라는 계절이 가지는 기표를 잘 나타내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떡볶이도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이게 최선이었을까? 이제껏 '아무튼, '시리즈 표지는 직관적으로 디자인했으면서 『아무튼, 떡볶이』는 느닷없이 순정만화(?), 마론인형(?)일까.. 차라리 동네 분식집 일러스트를 하지. 진심으로 그냥 빨간색 무지 표지가 이거보다 나을 거 같다. 디자인 때문에 만점을 주지 못하는 책이다. 하지만 내용은 정말 좋다. 요조 작가님의 글은 이제는 정말 믿고 읽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