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책

김금희 <사랑 밖의 모든 말들>

[ <사랑 밖의 모든 말들>, 김금희, 문학동네, 2020, p. 163~164]

  "소설에서 이상이 날자, 날아보자고 한 마지막 대목은 일종의 갱신이었을까. 무참한 패배였을까. 나는 이 일이 있고 나서 어려서부터 가졌던 그 의문을 다시 떠올렸다. 그것은 마치 예상치 못한 혼란이 지나고 난 뒤의 지금의 나처럼 환멸과 분노. 기대와 희망이 뒤섞인 "정오"의 "환란" 같은 상태였겠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은 아침부터 내내 닦아놓은 층계참을 바라보는 내 가족의 자부에서 노동의 자세를 배운다." 

 

 좋아하는 작가의 산문은 이따금 삶의 단면을 바다 위 윤슬처럼 반짝반짝 조명한다. 지루한 권태가 제법 그럴싸한 날들로 둔갑하는 언어는 금세 휘발된다. 김금희 작가님의 언어는 담백하다. 어쩌면 지나치게 솔직하다고 느껴졌다. 왜 주위에 그런 사람 본 적 있지 않을까. 너무 착한데, 너무 솔직해서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 그런 사람이 꾹꾹 눌러쓴 산문이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이라고 생각했다.

 제목은 사랑 밖의 말을 지시하지만 이 안의 내용은 김금희 작가님의 사랑하는 것들을 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작가님이 아직 잃지 않고 싶은 세상에 남은 인류애, 양심, 윤리, 일말의 믿음이 이 책에 매여있다. 그러니 우리는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을 말하면서도 '사랑' 앞을 서성이고 있다. 연애, 설렘 같은 사랑 말고, 더 넓은 차원의 사랑으로 걸어간다. 내 노동과 시간, 가족과 반려견을, 사람과 사물을, 법과 벌을 사랑하는 사랑하고 싶은 일말들을 기록하는 이 책을 나는 사랑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역설적이게 내가 사랑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반추했다. 난 아직 사랑을 모른다. 사랑해본 적도 없고 사랑하지도 않는다. 사랑하지 않은 것을 소거하면 사랑하는 것의 흔적을 쥘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사랑하지 않는 게 너무나 많아 나의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내 옆에 새근새근 새우잠을 자는 젤리의 발바닥을 빌려 세도 모자랐다. 뭐가 그렇게도 마음에 안 들었니. 어쩌면 나는 나를 제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뭉클 들었고, 그날 밤은 아주 슬펐다.